‘행동경제학의 바이블’. 이 책을 가리키는 가장 알맞은 표현 같습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저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의 개념을 만들며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수십년간의 연구와 실험내용, 인간의 사고체계 작동방식과 인지 편향들에 대한 정수를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다만 600페이지를 넘는 두께의 압박이 있습니다. 번역도 약간은 매끄럽지 않고 한호흡에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인간의 심리와 행동원리에 대해 한단계 이해를 넓혀줄 책임에 분명합니다. 웬만한 심리학 교양수업을 들은 것 이상의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은 후 인상깊었던 부분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시스템 1 vs 시스템 2
대니얼 카너먼은 우리 사고체계를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시스템 1은 원문으로 Thinking Fast 입니다. 직관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며 큰 노력이 필요없는 빠른 사고입니다. 주체적으로 생각을 한다기보다 자연적으로 생각이 드는 느낌이죠. 와이프 목소리를 듣고 화났음을 눈치채는 것, 1 + 1 계산하기, 빈 도로 운전하기 등에서 시스템 1이 작동합니다.
반면에 시스템 2는 Thinking Slow, 논리적 사고방식입니다. 노력이 필요하며 천천히 신중하게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와이프가 왜 화났는지 생각하기, 437 x 124 계산하기, 꽉 막힌 길 운전하기 등에서는 시스템 2가 작동합니다.
시스템 1은 아주 효율인 사고방식입니다. 저절로 빠르게 작동하고, 노력이 거의 필요 없으며, 직관적으로 여러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시스템 1이 가지는 특성 때문에 때때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에서는 시스템 1의 특성으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여러 편향들(어림짐작, 과신, 선택오류 등)을 소개합니다. 용어는 다소 낯설지만, 누구나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는 오류들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오류들이 작동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살면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실수를 줄이는 것에 도움이 될겁니다.
휴리스틱(어림짐작) 편향
인간은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믿음과 달리, 우리 인간의 뇌는 우리가 노출된 자극이나 환경에 더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시스템 1이 작동하게 되고, 나의 행동과 감정을 유도합니다. 이런 휴리스틱이 발생하는 원리로 점화효과·회상용이성·기준점효과 등이 있습니다.
· 점화효과 : 어떠한 (무의식적인) 경험이 특정한 감정과 행동을 유도하는 것.
ex) ‘노인’이 연상되는 단어를 읽고 난 후 실제로 걸음걸이가 느려짐.
· 회상용이성 :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사건의 중요성을 더 높게 평가.
ex) 테러사건의 확률을 정상보다 과도하게 높게 평가.
· 기준점효과 : 사전에 노출된 수치가(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실제 판단에 영향을 줌.
ex) 과도한 배상액을 청구할 때(근거가 터무니 없더라도) 실제 배상금액을 높게 판결.
점화효과나 기준점 효과(Anchoring effect)는 마케팅에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 이론들입니다. 비즈니스 제안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물건을 팔 때 처음부터 50만원을 제시하는 것보다, 100만원을 제시하고, (거절당한 후) 다시 50만원을 제시했을 때 성공확률이 훨씬 높다고 합니다. 100만원이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이었어도 기준점으로 작용해 구매자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식입니다.
인과관계 vs 우연
시스템 1은 원인을 찾고, 빈약한 고리를 연결하여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큰 사고가 발생하면 항상 책임소재를 찾죠. 하지만 이유가 없는 우연한 사건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할 때 엉터리분석이 됩니다. 주사위를 던져서 ‘1’이 나왔는데, 원인을 어떻게 찾을까요? 인과관계 오류와 관련된 편향들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 평균회귀 : 무작위적인 과정에서의 ‘변동’을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오류.
ex) 신인왕을 수상한 선수가 2년차에 부진한 징크스 → 평균에 수렴했을 가능성이 높다.
· 후광효과 : 앞에나온 특성이 뒤의 특성까지 영향을 준다.
ex) 첫인상이 좋은 경우 그사람의 다른 능력까지 좋게 평가.
· 결과편향 : 자신의 과거 생각을 실제로 일어난 상황에 맞게 수정하는 성향.
ex)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
인과관계와 우연의 착각 때문에 저지르는 오류는 주식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주가가 오르거나 내릴 때 전문가들은 어떻게든 원인을 찾고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인과관계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주가를 결정하는 수많은 우연적인 요소들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과거를 이해했다는 믿음은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옵니다. 대니얼 카너먼은 펀드매니저들의 연간 운용성과간의 상관계수가 ‘0’에 가까움을 증명했습니다.
펀드매니저들의 ’19년도 실적 순위와 ’20년도 실적 순위가 서로 연관성을 찾을 수 없게 뒤죽박죽이었다는 겁니다. 결국 주식 종목선정은 주사위게임에 가깝다는 얘기입니다.
헤지펀드의 굴욕?…”원숭이 주식투자 수익률 절반도 안 돼” [2015.6.26 연합인포맥스 홍지인]
주식에서 단기간 성공으로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초심자의 행운은 ‘실력’보다 ‘운'(우연)이었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렇다면 평균회귀 법칙에 따라 다음번에는 잃게될 확률이 클 겁니다.
‘초심자’와 ‘고수’의 실력 차이는 게임 한 두판에서는 수많은 우연적인 요소들 때문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고수는 매 게임마다 약간 높은 확률을 선택합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누가 실력자인지 드러나겠죠.
손실회피 심리
사람들은 수익보다 손실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발생하는손실과 수익이 동일하다면(혹은 수익이 조금 더 크더라도) 그 행동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0만원에 산 콘서트티켓이 15만원이 되어도 팔지 않는 ‘소유효과’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15만원이었으면 사지 않았을 티켓이었는데도요.
때에 따라서 손실과 이익의 틀짜기(프레이밍)을 전환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10만원을 더 내야해(손실) → 1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면 왕복 4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이익). 손실을 비용으로 인식할 때, 손실회피 심리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또한 대니얼 카너먼은 좁은 틀짜기(프레이밍)과 넓은 틀짜기에 대해 얘기합니다. 50만원을 따거나 30만원을 잃을, 확률이 반반인 도박이 있다고 칩시다. 손실회피 심리 때문에 우리는 이 게임을 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게임을 100번 반복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확률상 내가 얻는 금액의 기대값은 2천만원입니다. 당연히 수락해야겠죠.
살면서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단편적으로 그 문제만 바라보고 판단하면, 손실회피 오류 때문에 더 나은 선택을 못할 수 있습니다(좁은 틀짜기). 이 문제가 100번의 게임중 한판이라고 인식한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겁니다(넓은 틀짜기). 더 많은 요소들을 고려하고 전체적으로 확률 높은 게임을 하는 것이죠.
생각에 관한 생각 결론 – 나의 교훈
① 행동과 감정, 성취는 상호작용한다. 긍정적 마인드 갖기가 중요
→ “행복해서 웃는게 아닙니다. 웃어서 행복한 거에요!”
② 중요한 순간에는 시스템 2의 도움 필요
→ 천천히 생각하기, 자아고갈 상태에서는 결정 미루기
③ 넓은 틀짜기(프레임)로 생각하는 연습
→ 발상의 전환, 다각도로 생각하기
④ ‘운’과 ‘실력’을 착각하지 말자. 전문가도 사실 모른다.
→ 시장을 예측하려 하지 말고 대응하자!